아무튼 피아노 🎹
2020년 | 김겨울 | 제철소 | 아무튼 시리즈 48
올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클래식 🎻
내 음악 취향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알고 좋아하게 된 걸까? 악보라고는 빨랫줄에 걸려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만 읽을 줄 알고 화음이라고는 도미솔 밖에 모르지만 여러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소리가 흥미롭고 그게 그저 아름답게 들리는 단순한 이유였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서사를 원하는 대로
재구성할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나 역시 피아노를 중심으로
삶의 서사 하나를 꿰어낼 수 있었다.
-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에필로그)
총평
⭐️⭐️⭐️⭐️ 3.8/5.0
읽으면서 나와 음악 사이에 대해 그래프를 그려봤다. 첫 기억부터 현재까지 띄엄띄엄 새겨진 점들을 떠올리는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데 푹 빠져버렸다. 한때는 그냥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악보 없이 피아노 연주를 마스터하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저 다가가서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내가 되었다. 동경의 대상을 옆에 두고 느끼는 충만감. 피아노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느껴지는 이 책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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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악을 좋아하고, 계속 좋아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달빛을 계속 좋아하는 것과 같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상 깊은 구절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솔직한 악기라는 것. 나의 확신 없이는 희미한 소리만 웅얼 대리라는 것.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에 빠지게 된 건 관악기 소리가 좋아서였지만, 언젠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나서 피아노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악기들은 음 하나하나가 풍성하다고 느끼는 반면, 피아노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달까. 그래서 조성진처럼 피아노로 분위기를 자아내고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대단한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을 읽은 듯한 내용이 있어서 마치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짝사랑에 비유하는 표현과 아마추어의 마음 또한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
걸어 들어가기
📌그 집요한 문답 사이에서 나는 나의 제유를 이해했고, 이제는 더 이상 삶을 한 가지 회한으로만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 내가 조직한 내 삶의 서사에서 피아노는 빠질 수 없는 주춧돌로 서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나도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웠었다. 손 끝의 힘을 잘 쓰는 걸 타고난 내 신체적 특성이라 여겼는데 돌이켜보니 피아노가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또래 친구들이 코드를 익혔을 때 나는 계속 까막눈이였다. 그래서 지금은 이 단단해진 손 끝을 마사지할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체한 친구의 손, 혈액순환이 안돼서 차가워진 엄마의 발. 나에게 피아노가 남아있다니, 이렇게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피아노의 역사를 발견하다니. 신기하고 재밌고 기쁘다.
피아노의 몸
📌피아노는 내 뇌의 어떤 부분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나는 그것을 아주 선명하게 느낀다.
모든 문장 중 내게 가장 강력하게 꽂힌 문장이었다. 이 문장만이 내가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비슷한 시기에 합창단과 합주 대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주인공 같은 소프라노를 하고 싶었지만 알토를 하게 되어 실망스럽고 속상했었다. 그러나 함께 부르고 연주할 때 얼마나 조화롭고 웅장했는지 마음 한편이 찌릿해지는 감동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 순간이 내 뇌의 어떤 부분을 영원히 바꿔놓았고 지금의 나는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면 뭉클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에 중독되었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어릴 적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거듭해서 어른이 될수록 자주 느낀다.
피아노의 영혼
📌피아노 연주는 피아노의 몸과 연주자의 몸과 공간의 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나는 사건이다.
클래식 입문자가 이 책을 본다면 이 챕터에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내가 무얼 들었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곡에 대해 나열할 때는 내 미래 플레이리스트인가 짐작했다.
중간에 쇼팽 발라드 2번을 언급해서 냉큼 찾아들었다. 나는 김겨울 작가처럼 음악이 계이름으로 들리는 천재성은 없지만, 계이름으로 들리지 않는 또 다른 복을 타고나서 독서를 할 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는데, 음악 책은 이렇게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해주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김겨울 작가와 나는 같은 음악을 듣고 공유하게 된 감상 공유자가 됐다.
찾아 들어가기
📌그러니까 하나를 깊게 파고들어 가는 걸 즐기는 성향의 사람에게 클래식 피아노는 그야말로 끝없는 노다지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곡을 어떻게 다르게 쳤는지, 나는 어떤 버전이 좋은지 탐험하는 것은 클래식 피아노 듣기의 재미 중 하나다.
📌많은 클래식 리스너들처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에 매료된 시기가 있었다.
📌공연장에서 연주를 들을 때 또 하나의 재미는 연주자의 숨소리와 허밍을 듣는 일이다.
내 이야기를 잔뜩 써놔서 깜짝 놀랐다. 구구절절 깊이 공감 -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지금의 나예요. 😅 모두가 천재 같지만, 그중에서도 경이롭다고 느껴지는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파가니니! 한동안 유튜브와 플레이리스트를 장악했었다.
그게 다 음악
📌나는 내가 나를 속일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의 몫으로 남겨두게 되는 지를 배웠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무한히 변주되는 약속
📌재즈 피아니스트 들은 구조를 생성하는 관점으로,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은 구조를 해석하는 관점으로 곡에 접근한다.
📌클래식 피아노와 클래식 발레에 어떤 고향과도 같은 느낌, 본능적인 노스탤지어를 느끼는데, 단지 규칙 안에서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둘 모두 불가능한 완벽을 향해 불완전한 시도를 계속해나간다는 점이 나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일 수도 신일 수도 없어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선택을 향해 복작거린다. 세상을 사물로만 볼 수도 없고 추상적으로만 볼 수도 없어서 그 사이에서 덜컹거린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모든 것에 나는 늘 약하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는 악보와 해석 사이의 싸움, 관습과 파격 사이의 싸움, 원상(原象)과 상(像) 사이의 싸움이다.
클래식 피아노와 재즈 피아노가 다른 점, 클래식 피아노와 발레가 비슷한 점 이런 것들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하여 통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듣는 일
📌침묵의 시간만이 나를 정의할 수 있으며, 듣는 시간만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듣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듣기 위해 침묵해야 하며, 침묵의 힘으로 말해야 한다. 더 자세히, 더 세심히, 더 온전히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의 소리도, 다른 누군가의 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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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검색하는 법
2022.09.18 - [Useful] - 클래식 음악 제목 읽는 법과 용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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