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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한국소설]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시선으로부터,
2020 | 정세랑 | 문학동네

22년 2월 1일 ~ 13일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6367438

시선으로부터,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book.naver.com



저자 소개
보건교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그리고 시선으로부터 까지 정세랑 작가의 책을 세 권째 읽게 됐다. 피프티 피플,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등등 국내 도서 추천 리스트에 항상 있는 핫한 작가인데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정세랑 작가의 책엔 늘 따뜻한 정서가 있다. 불편한 진실을 은근하게 풀어내는데, 내 감정을 뒤흔들지 않으면서 깊숙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침투해온다. 그래서 내가 내키는 대로 읽기가 편했다. 쉽게 읽히기 때문에 슉슉 넘기며 재밌게 보거나 내 머릿속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서 읽거나. 나도 모르게 책에 내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하는 작가의 힘이 있다.


목차 소개차 개

목차는 심플하게 1장부터 31장까지 있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가계도가 나온다. 소설에 취약한 나는 이 가계도를 찍어두고 계속 참고하며 읽었다.😅 (아니.. 외국 소설일 땐 외국이름이라 생소해서 그렇다 쳤는데,, 한국 소설에서도 똑같다니..^^ 등장인물 관계도 못 외우는 건 고질병인가..)


줄거리 요약
📌역사 📌인종차별 📌가스라이팅 📌갑질 📌진로 📌페미니즘 📌혐오 📌세대갈등 📌공동체 📌생태주의
제목을 보고 타인의 시선 이런 건가.. 싶었는데 심시선 할머니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다. 심시선 여사의 제사를 위해 온 가족이 하와이로 떠나며 각자의 이야기와 시선과의 추억들이 전개된다. 마냥 끈끈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들에게 개개인마다 다양한 아픔, 걱정, 고민들이 있는데 매우 현실적이고 되풀이되고 있는 문제 들이기도 해서 작가가 여러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달해주고 싶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북마크를 하게 되는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 속에 살아가는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북다트 파티



감상
이 책을 읽고 나면 심시선이 내 할머니였으면, 내 이웃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 것 같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 가부장 사회 속에서 꿋꿋하게 제 목소리를 내어준 그런 여성. 나는 불편한 것을 내색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것보단 용기 있는 예민함을 응원하는 편인데, 끊임없이 갈등이 있어야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 봐야할 문제는 뭔지, 중요한 건 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줄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너무나 외로운 길이기 때문에 함께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또 이 가족은 평범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이 것이야 말로 평범한 가정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파혼과 독신,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세 가지의 성을 가진 가족. 가계도에서부터 획일화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양한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데, 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북마크

💜심시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p21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중략)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 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중략)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p29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게 인간이란 생각을 했다. p46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p178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 p280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p289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p299



💜화수

육체의 죽음을 받아들이자 육체가 아닌 부분은 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p16
여론이 들끓었고 사건이 더 제대로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드디어 화수와 동료들에게 이입했다. 여자 여럿이 다친 걸로는 꿈쩍도 안 하던 사람들이 격양되어 편이 되어줬다. p110
21세기 사람들은 20세기 사람들을 두고 어리석게도 나은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지만, 누구든 언제나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 상태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렇게 방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된다고, 기억을 애써 메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p111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중략) "네가 아니면 누가 낳아?"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p322



💜우윤

자주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은 유령처럼 실루엣을 갖게 된다. p63
나는 특별히 용감하지도 않지만 겁쟁이도 아니야,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p95
부모를 설득하다 우윤은 아늑해졌다. 원래 불안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후천적인 불안이었고, 우윤이 원인이었다. 죄책감과 배신감이 함께 들었다. 우윤이 아팠던 건 우윤 탓이 아니었는데, 이제와 우윤이 노력해도 우윤의 부모는 변하지 못할 것이었다. 자식만 부모 속을 썩이는 건 아니었고 반대도 가능했다. p100
우윤은 피곤해서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규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우윤은 사촌동생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꼬인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군가는 건강하게, 좋은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었다. (중략) 완벽하게 파도를 탈 거야. 그 파도의 거품을 가져갈 거야. p102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p248
"엄마 이제 안 울어?" 해림이 물었다. "응, 안 울어. 얼른 다시 사러 갔어." "왜 그런 걸로 울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거야.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우윤은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건조한 답을 택했다. "속상하면 울 수도 있지." p296



💜지수

"네가 열려있는 사람이라 변화에도 적극적인 거겠지.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확 느꼈는데. 열려 있는 사람이란 거. 튼튼하게 활짝 열리는 창문이나 공기가 잘 통하는 집처럼" p204


💜명은

제대로 따라 하기엔 짧은 기간이었고, 영원히 그 정수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아 슬퍼졌지만 그 슬픔이야 말로 여행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212
"착취적이지 않은 진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로컬이라 부를 수 있겠죠" 명혜는 그 폐쇄적이지 않은 범위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공동체에 누가 속할 수 있을지 넓게 열어두고 끌어안을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p214


💜해림
해림이는 새를 좋아하고 진심인 아이인데, 나도 새를 좋아해서 해림이의 이야기와 생각이 나오면 내내 흐뭇하고 귀여워했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새들에 해림이는 걱정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길에 대해 고민했다.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하와이의 새들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고, 해림은 급하지 않게 판단 내렸다. (중략) 심지어 비둘기조차 천대받지 않는 분위기가 놀라웠다." 이 부분을 읽자 나도 할 말이 많아졌다. 길거리의 많은 비둘기들을 보며 혐오하는 사람들을 나도 혐오하기 때문인데,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자기가 주인인양, 인간 세계에 비둘기가 침투했다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유별난 사람 취급받는 분위기도 너무 싫다. 그래서 해림이가 짜증 난다는 표현을 썼을 때 너무 공감됐다. 심지어는 비둘기보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며 공감능력 떨어진다는 글을 본 적도 있는데, 아직도 다시 생각하면 열불 난다. 🔥

아주 빨리 뛰는 심장으로 짧게 살다가 가벼운 깃털과 가는 뼈만 남기는 대상에 대해 왜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지 해림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p223
그리고 아무도 새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중략) 그런 화제들을 꺼내면 네가 커서 고쳐, 공부 열심히 해서 고쳐, 하고 아주 우습다는 듯 대견하다는 듯 반응해오는 것도 짜증 났다. 자기들이 신나게 망쳐놓은 다음에 어쩌라고? 나중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웃겼다. 언제? 새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p226
무용해 보이는 과열 경쟁의 경로에서 벗어나 새를 많이 보고 새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택하는 게, 가능할까? p227



💜경아

사회적 결함 없는 남성 가장의 이름값이었다. 젊은 여자 둘이 대신할 수 없었다. 빌려 쓰는 권력이 그렇게 허망함을 배웠다. p261
경아는 자리를 지키고 엉덩이로 뭉개기로 마음먹었다. (중략) 망했다 흥했다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들은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나의 작은 권력은 그래도 이제 빌려 쓰는 권력이 아니지." p297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